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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엘리트들이 보는 한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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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엘리트들이 보는 한국

Hubble 2018. 2. 12. 08:03

트럼프 시진핑이 그러는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더라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0875958



2006512일 중국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연구원(외교학과 대학원) 회의실에서 나는 대학원생 20여명을 앞에 두고 '한-중 관계와 매체의 작용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나는 최근 한-중 관계에 영향을 끼쳤던 세 가지 사건에 대해 두 나라 매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소개했다.

 


세 가지 사건이란 2002년의 한 · 일 월드컵2004년의 동북공정, 2005년의 식품 안전문제 등이었다.

 


토론이 약간 무르익어갈 때 한 남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단오절은 중국에서 건너간 것이다한국의 음력은 중국의 것이며, 단오절이란 바로 중국의 음력으로 55 일이다그런데 왜 한국은 단오절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했는가. 그에 대해 중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한국의 단오절이 중국의 음력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다들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의 강릉 단오제는 중국의 단오절과 다르다.

 


만약 중국이 한국의 강릉 단오제가 중국의 단오절로부터 유래했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면 중국은 모든 불교 유적지들을 다 등재 명단에서 해제할 것을 신청해야 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상한 것인데 중국이 이런 불교 유적지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 놓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불교가 중국에서 발상했다고 착각하지 않겠는가.

 


다른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의 이 답변에 자극받은 것으로 보이는 그는 단도직입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 질문이 아니다. 나는 질문을 할 생각은 없다. 이건 그냥 내 관점이다. 그러니 답변을 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과거의 조선 [조선왕조가 아니라 한국사 전체] 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판단한다. 조선은 중국의 역대 황실에 꾸준히 조공과 사신을 보내왔다. 중국엔 황제가 있었지만 조선엔 황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 조선의 왕은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한 적이 없었고, 중국의 신하국(臣下國)이라고 인정을 해왔다. 그러니 속국이 아닌가? 나는 과거의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본다.

 


이날의 토론 내용을 이렇게 길게 소개한 건 그게 나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의 엘리트 또는 예비 엘리트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단면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20039월부터 20069월까지 3년 동안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친구들로부터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물론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한국사람 듣는 데서 쉽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술이 좀 들어가고 얘기가 무르익다보면 이런 식의 도전을 하는 중국 친구가 심심찮게 있어왔다.

 


한번은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의 지은이를 비롯한 중국 친구들 여럿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술잔이 여러 차례 좌중을 돈 뒤, 한 중국인 친구가 내게 비슷한 도발을 해왔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한국이 지금 경제적으로 중국보다 좀 낫다곤 하지만, 난 한국을 50퍼센트 반쪽짜리 국가로밖에 인정을 안 한다. 반면에 일본은 100퍼센트라고 인정한다. 일본은 이전에 천황이라고 황제를 자칭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그걸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중국생활 3년 동안 이런 유형의 도발을 겪을 때마다 나는 왜 중국인들이 오늘날 아직도 이런 봉건 시대, 황제 시대의 발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대학원생들과 격론을 벌인 뒤 그게 중국인들의 의식구조 안에 일반적으로 정착돼 있는 사고임을 비로소 뚜렷하게 확인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논리를 들으며 내 눈과 귀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지금도 그 솔직한 격론의 자리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중화와 오랑캐라는 표현을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이 자기중심주의의 관념을 깨끗하게 청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화이관을 아직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넣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중국의 지식인 가운데 누구도 철저하게 이를 비판한 적이 없다는 데서도 입증된다.

 


문헌을 찾아보니 중국인 학자들 가운데 중국의 화이관이 중국의 개국(開國)을 지연시켜 중국의 근대화를 뒤지게 만들었다는 식의 비판을 하는 이들은 더러 있다.

 


그러나 화이관 자체에 메스를 들이대 그것이 종족주의의 편견에 기초한 그릇된 세계관임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글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사실은 상태가 더 심각하다. 중국인들은 아직도 그들이 왜 전통 시기의 화이관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화주의가 철저하게 극복되지 않고서중국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평화롭고 평등 한 연대의 공동체를 구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양이니 동양철학이니 하는 용어가 여전히 널리 유행하고 있다.

 

가령 동양학이란 모호한 용어는 김용옥이 1980년대에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란 책에서 퍼뜨렸고, 이후 동양철학이라는 두루뭉술한 낱말 또한 여러 차례에 걸친 그의 동양철학부흥회를 통해 일반화했다.

 


나는 동양철학이나 동양학과 같은 모호한 낱말은 우리의 명징한 인식을 위해 지금 당장 내다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호한 낱말 대신 나는 '중국철학이나 인도철학등 구체적이고 명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우리는 동양철학이라는 낱말의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동양철학이란 말의 가장 큰 해악은 한국을 포함한 중국 주변 문화권역의 겨레들이 이 모호한 낱말에 기대어 중국문화가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혹은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양 착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다.

 


가령 김용옥이 말하는 동양철학의 실제 내용은 공자, 노자 등의 중국철학이다.



이걸 동양철학이라고 말하는 순간 한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은 착각에 빠져든다.

 


한국도 동양' 의 일원이므로 중국철학의 내용이 바로 우리를 대표하는 철학이라는 환상을 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이 중국철학을 아시아에서 매우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철학인 것으로 착각하는 결과를 낳는다.

 


중국철학은 한족이 만들어낸 그들의 생존논리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바탕에는 중화중심주의가 전제로 깔려 있다.

 

물론 중국철학에도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는 중국철학의 보편성을 인정하기에 앞서 그 안에 담긴 종족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먼저 분명하게 발라내어 옥과 돌을 가려내야한다.

 


어떤 철학이나 문화가 애초에는 종족의 생존논리와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김용옥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런 시각에서 기독교의 구약성서가 유대인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겨레가 성경으로 떠받들 만한 문헌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런 관점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 그가 유독 중국철학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시각을 똑같이 적용하지 못한다는 건 그가 중국철학에 대해 얼마나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국철학 상서시경」 「춘추」 「예기등 문헌들에는 예외 없이 화하족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인 화이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공자, 맹자, 순자와 같은 이른바 위대한 유학자들도 이 화이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심지어는 중국 철학사에서 좀 비판적이거나 아웃사이더처럼 보여져온 노자, 장자 또한 이 세계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김용옥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 사마천의 사기는 바로 화이관의 시각에서 중화주의 역사학의 기본 틀을 확립해 후대 한족 역사학의 모범이 된 대표적인 저서다.

 


중국문화를 형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 중화주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동양철학 이 우리를 대표해줄 수 있다고 믿는 몽매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유럽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카를 마르크스는 그들(동양인)은 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없으며, 다른 누군가가 대신 표현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동양철학이라는 몽매에 가려져 있을 때, 한국은 누군가가 대신 표현해줘야 하는 식민지 안의 식민지, 주변자의 주변자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런 편협한 관점에 갇힌 까닭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중화주의라는 세계관의 디엔에이 (DNA)가 그들을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김용옥식의 맹목적인 동양철학계몽주의에 고별을 선언하고, 중국철학을 철저하게 우리로부터 타자화함으로써 새로운 고전 독법을 찾아가야 할 때다.



 

굿바이 '동양철학' 굿바이 김용옥

이상수

인물과사상 20079월호(통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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